코딩노예

인터넷, 특히 자극적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유튜브의 세계에서는 극단주의가 판을 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코더고 누군가는 개발자이며 누군가는 소프트웨어 아키텍트고 누군가는 프로그래머라는 이야기들. 최악의 표현으로 들리는 건 "코딩 노예"입니다.

저는 코더입니다.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역할에 따라 비즈니스 로직을 생각하는 역할이 있고 그걸 구현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 마련입니다. 이미 정해진 논리가 있고, 그걸 그대로 구현합니다. 설계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며 다른 이들은 그것을 코드로 바꿀 뿐인거죠. 그렇다면 저는 코딩 노예일까요?

코딩 노예라는 표현은 어떨 때 말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코드는 짤 수 있지만 논리를 표현할 수 없는 수준? 논리를 표현하지만 어설픈 수준? 논리를 표현했고 잘 작성했으나 예외처리같은 부가적인 것들이 부족한 수준? 논리를 못 만들어서 누군가가 논리를 만들고 그걸 코드로 바꾸는 수준? 이걸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게다가 코딩 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경력이 적거나 없는 경우가 많더군요. 경험도 없는 사람이 코딩의 세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요?
어떤 우월감으로 다른 사람이 작성한 코드는 코딩 노예가 작성한 것이고 본인은 (예비) 개발자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걸까요. 우월감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더 높은 수준의 개발자가 봤을 때 본인의 코드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비춰질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그로를 끌고 싶은 것 뿐일까요.

실무에서의 개발은 인터넷 세계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엘레강스하고 모든 규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며 멋진 알고리즘을 짜서 환상적인 코드리뷰를 거친 다음 우아하게 코드를 배포하고 나이스한 모니터링을 하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일부 회사는 분명 그렇게 하고 있겟지만, 제가 머무는 SI 현장은 그런거 없습니다.
~~아니 사실은 있는데, 그저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쓸모없는 절차만 추가되는 기적.~~

다 지어진 건물은 번쩍거리며 빛나지만 건설 현장에서는 먼지와 땀이 범벅된 사람들의 노고가 묻어있는 법입니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은, 결국 본인의 얼굴에 먹칠하는 거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dp6ydwL4C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