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동안 꽤나 많은 일터를 전전했습니다. 대충 세 봐도 열 몇군데 정도는 되는 것 같네요. SI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적도 있고, 일반 기업의 직원인 적도 있었으며, 스타트업에서 특정 직무를 담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심지어는 나홀로 사장인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근무태도가 완전히 전환된다는 겁니다.
SI에서 일할 때는, 정확히 시킨 일만 합니다. 어떤 아이디어도 내지 않으며, 정해진 규칙에 따라 업무 로직만을 구현하는 역할에 충실합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정 반대였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혼자 필요한 기술을 찾아서 어떻게든 구현하고 비즈니스 로직을 연결시켰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일할 때는 반반이었습니다. 어느정도는 자율성을 가지고 어느 정도는 시키는 대로 하는 식이었죠. 나홀로 사장일 때는 흑역사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대신 실력은 이 때 가장 많이 늘었다는 점 정도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접근 권한과 동인의 문제로 귀결되더군요.
적극적이었던 스타트업에서의 삶을 먼저 돌이켜 봅니다. 백엔드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엔드 구현에 필요한 모든 기술은 혼자 다 결정하고 구현해야 했습니다. 회사의 비즈니스 논리를 컴퓨터 논리에 맞추는 역할이었던 거죠.
저에게는 백엔드에 필요한 모든 리소스 접근 권한이 있었고, 비즈니스 룰에 접근할 권한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결정은 대표님이 하시지만) 회사의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표출할 수 있었습니다.
SI의 삶을 생각해 보면 정확히 반대입니다. 어떤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도 없습니다. 이 기능을 왜 개발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고, 어떤 기술을 쓸 지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저 결정된 대로 코드를 작성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직원일 때는 회사에 비전과 목표, 그리고 기능 개발에 대한 정보에는 접근할 수 있었지만, 코드 구현에 있어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개발했습니다.
이렇게 써 두면 스타트업이 엄청나게 이상적인 환경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권한이 있으면, 책임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금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닐 지라도, 나의 선택이 회사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록 조심스러워지는 겁니다.
게다가 의사 결정 과정 자체가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닙니다. 뭔가를 결정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는 입버릇처럼 "코딩이나 할 때가 쉬웠지" 라고 중얼거리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일터를 옮겼습니다. 스타트업이나 회사에서 하던 일이 너무 골치가 아프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돌아갔습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할 때는 업무량은 많지만 스트레스는 줄어드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죠. 마치 택배 물류센터에서 뇌를 비우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택배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기만 하는 일과 똑같습니다.
반대로 SI의 단순 노동이 지겨워지면 다시 회사를 기웃거리고는 합니다. 이번에야말로 다르겠지, 라는 마음으로. 무한 반복인거죠.
다음번에 저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prVJVNN40Q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