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 보니 건너편 자리에 있던 사람 책상이 비워져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혼나던 사람이었습니다. 속도가 늦다고,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고, 때로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밉보인 사람 마냥 하루에 몇번이고 잔소리를 듣는 게 일상이었던 사람. 계약 기간이 만료된 걸까? 보통 계약 기간은 월 단위로 끊기 때문에 월말이 아닌 이상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본인이 못이겨 나간 것일까요? 혹은 누군가가 철수를 명령한 걸까요? 자세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저 또한 언제든지 일하던 자리를 정리하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분이 묘해집니다. 항상 나오고 싶지만, 나오면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눌러야 하는 삶. 그래도 뭐, 내 한몸 일할 곳 없으리 하는 마음을 가지고 버텨 나갑니다. https:..
조용하던 프로젝트 룸에 새로운 인력들이 세팅되었습니다. 프로젝트 룸은 큰 공간이 있고 여러 프로젝트들이 하나의 사무실에 모여 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전 프로젝트 인력들이 프로젝트 종료로 철수하고 난 후 한동안 잠잠했었는데, 다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 겁니다. 프로젝트 룸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곳이므로 그런가보다 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년의 여성 개발자. 그녀는 끝도 없이 말을 했습니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도, 업무와 관련 없는 이야기도. 조용한 사무실은 그녀의 목소리만 울려퍼졌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받아주던 같은 프로젝트원들도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대답은 짧아졌고 때로는 무시하기도 하는 것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그녀는 ..
생성형 AI가 코드를 짜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한국어로 작성하면 그것을 코드로 바꿔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실험해 봤습니다. 결과는? 아직은 제가 챗 GPT보다는 조금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사고에는 문맥이 있고, 문맥 안에서 두루뭉실한 표현이 존재하며, 같은 단어가 다르게 쓰이거나 다른 단어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알아채기에는 조금 더 기술의 발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AI가 인간적인 요소들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일일이 가르쳐야 합니다. 재미있는 건 요소를 정의하고 흐름을 정의하는 규칙을 가리켜 프로그래밍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는 건, 특정 언어나 프레임워크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고 논리적인 분류와 흐름을 만..
인터넷, 특히 자극적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유튜브의 세계에서는 극단주의가 판을 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코더고 누군가는 개발자이며 누군가는 소프트웨어 아키텍트고 누군가는 프로그래머라는 이야기들. 최악의 표현으로 들리는 건 "코딩 노예"입니다. 저는 코더입니다.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역할에 따라 비즈니스 로직을 생각하는 역할이 있고 그걸 구현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 마련입니다. 이미 정해진 논리가 있고, 그걸 그대로 구현합니다. 설계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며 다른 이들은 그것을 코드로 바꿀 뿐인거죠. 그렇다면 저는 코딩 노예일까요? 코딩 노예라는 표현은 어떨 때 말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코드는 짤 수 있지만 논리를 표현할 수 없는 수준? 논리를 표현하지만 어설픈 수준? 논리를 표현했고 잘 작..
장비를 지참하지 않는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주로 금융권이나 보험, 증권등의 유사 금융권들입니다. 혹은 외국계 기업들은 종종 업무용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을 지급해 주기도 합니다. 내 컴퓨터를 쓰지 않으니 좋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지급하는 컴퓨터는 뭔가 여러가지 의미로 이상합니다. 첫번째. 부팅하는 데 터무니없이 오래 걸립니다. 2024년에 PC가 켜지는 데 5분이나 걸리는 건 진심으로 놀랍습니다. 두번째, 작동은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느립니다. 다들 용케도 잘 참고 이걸로 일을 하고 있다 싶을 정도입니다. 세번째,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이 잔뜩 깔려 있습니다. 대부분 보안 관련 프로그램입니다. 혹시나 외주 개발자가 내부의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가져갈 까봐 걱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로 살아간 이후에는 늘 노트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몰디브에서 모히또하면서 비치파라솔에 앉아 썬그라스 너머로 코드가 비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트북은 그저 일을 위한 장비일 뿐입니다. 목수에게 망치가 필요하듯이, 프리랜서 개발자 일을 하려면 노트북이 필요합니다. 고객사에 따라 PC를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노트북은 프로젝트 시작할 때 들고 가서, 프로젝트 종료시 모두 포멧하고 가지고 나오는 기계일 뿐입니다. 오로지 업무용입니다. 노트북.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프로젝트 종료 후 잘 모셔두었다가 다음 프로젝트에 고스란히 들고가는 나의 장비들. 프로젝트 구인 공고를 보면 장비 지참이라고 써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 어떤 프로젝트를 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