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상 인터넷이 금지되어 있는 프로젝트들이 있습니다. 혹은 인터넷은 열려 있더라도 스택 오버플로우라던가, 혹은 msdn이라던가 하는 일부 사이트에만 접근 가능한 경우도 있지요. 얼핏 생각하면 인터넷이 안되니 딴 짓을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개발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딴 짓도 많이 하기는 하지만 라이브러리도 다운받고, API 문서도 읽고, 다른 시스템에도 접속하며,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검색해 봅니다. 이런 것이 일절 막혀있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메이븐을 쓰지 못해서 내부 넥서스를 이용해야 하며, 새로운 라이브러리는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외부에 공개된 공식 매뉴얼도 접속할 수가 없으므로 모바일로 접속해서 일일이 따라 치는 기행이 펼쳐..
팀원이 한명 추가 투입되었습니다. 이바닥의 일은 "사람이 더 필요할 만큼 업무가 많은가?"에 의해 인원이 결정된다기보다 "고객사가 얼마나 돈을 잘 쓸 수 있는가?"에 의해 투입 인원이 결정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고로 그다지 바쁘지 않은 프로젝트에서도 누군가가 새로 오는 건 신기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삼년차 개발자라고 했습니다. 그런가보다 했죠. 컴퓨터가 세팅되고 나자 그는 메신저 단체방에 끊임없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제도 다양하더군요. 저도 모르면 물어보자 주의자이기 때문에 질문을 하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습니다. 곤란한 것은 조금 눈치가 없다는 겁니다. 프로젝트 단톡방이니만큼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대부분 업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친구는 다른 사람들이 다른 주제에 대해 대화를 ..
오래된 기술은 따분합니다. 낡았고, 전혀 멋지지 않습니다. 단순한 일을 하는 데 엄청난 공수가 들어갑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새로운 자극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쌓아둔 노하우가 있고, 단단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레퍼런스도 많습니다. 모르는 이슈는 전세계 누군가가 이미 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정적인 겁니다. 새로운 기술은 쿨합니다.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새로운 배움이라는 갈망을 해결해 줍니다. 그렇지만, 신기술은 금방 사라집니다. 세상에 깃헙이 나온 이후로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가 매일 생겼다가 사라지는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시간의 선택을 받은 프로젝트는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저는 조금 전략적으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신기술이 막 나왔을..
개발을 몇 년 이상 지속하다보면 그저 기술이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해야 할 떄가 옵니다. 아키텍쳐, 비즈니스, 사람 관리, 조직이 나아갈 방향 등을 보고 느끼고 결정하는 것을 경험해야 할 시기입니다. 직원일 때는 사람의 성장이 조직의 성장이고, 조직이 성장하면 적어도 내가 더 편해지거나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프리랜서는, 때론 저사람의 성장이 나의 밥줄에 영향을 줍니다. 프리랜서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기획자 도그냥님의 유튜브에서 기획은 상위 기획과 하위 기획으로 나누어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상위 기획은 이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와 방향성을 잡는 것인데 반해, 하위 기획은 방향성이 정해진 일을 더 세심하게 다듬는 작업을 한다고 말씀하시더..
저는 그동안 꽤나 많은 일터를 전전했습니다. 대충 세 봐도 열 몇군데 정도는 되는 것 같네요. SI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적도 있고, 일반 기업의 직원인 적도 있었으며, 스타트업에서 특정 직무를 담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심지어는 나홀로 사장인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근무태도가 완전히 전환된다는 겁니다. SI에서 일할 때는, 정확히 시킨 일만 합니다. 어떤 아이디어도 내지 않으며, 정해진 규칙에 따라 업무 로직만을 구현하는 역할에 충실합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정 반대였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혼자 필요한 기술을 찾아서 어떻게든 구현하고 비즈니스 로직을 연결시켰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일할 때는 반반이었습니다..
저는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큰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사실은 그다지 개발을 잘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익명성에 기대어 고백하건데, 사실 저의 개발 실력은 그저 그렇습니다. 엄청 잘하는 수준은 아니고 그렇다고 필요한 걸 못만드는 것도 아닌 실력. 마치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분식점 사장님의 요리 솜씨 정도의 수준이랄까요. 그렇지만 저는 절대 이런 티를 내지 않습니다. 제가 잘하는 것이 있다면, 실은 잘 못하면서 잘하는 척 하는 겁니다. 막상 눈 앞에 닥치면 다 해낼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똑같습니다. 알아도 표현하지 않고, 몰라도 내색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은둔 고수같은 느낌을 주는 전략을 취하는 겁니다. 가족들은 개발의 세계에..